「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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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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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은 굉장히 부담스럽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지 보통사람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가족 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고 원망하거나 버리고 살아가는데 어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말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누르고 내가 이겨야 성공을 하는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이웃을 사랑 하십시오’라고 외치는 성직자를 보면서도 진정성보다는 오히려 바리새인의 위선으로 여겨진다. 그의 일상이 너무 호화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더더욱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정반대에 놓인 자이다. 자신의 감정과 고통에는 매우 예민하나 타인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화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내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을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사이코패스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이런 비슷한 성향이 자리 잡고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고 특히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며 그들을 내 맘대로 부리려는 성향(갑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갑질 성향을 가진 내’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힘 있는 자가 아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일컫는다. 약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이다. 약자로서 살아가는 장애인은 쉽게 괴롭힘을 당하고, 놀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부담스러운가? 부담을 털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방법을 생각해 본다. 어렵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실천이 쉽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을 장애인에게 행하는 것이다. 내가 먹는 밥을 그들도 먹게 하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게 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그들도 보게 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은 잘 먹지 않는 인스턴트 음식을 장애인에게 쉽게 제공한다면 그것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어떤 말과 행위로 기분이 상하거나 고통을 받았다면 장애인에게도 그러한 말과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각성을 가져야 한다.
내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약자를 깔보고 무시하려는 성향이다. 말을 못한다고, 힘이 없다고 장애인을 막 다루려 하는 나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이 나에게 없는지 경계해야 한다.
‘장애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약함을 이용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쁨과 아픔이 나의 기쁨과 아픔이 되어 공감하고 나누는 것에서 그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여전히 부담스러운가?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다. 매일 일상 속에서...
곽종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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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함 회보 06호에 실린 글 입니다
피를 나눈 가족 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고 원망하거나 버리고 살아가는데 어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가?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말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누르고 내가 이겨야 성공을 하는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 ‘이웃을 사랑 하십시오’라고 외치는 성직자를 보면서도 진정성보다는 오히려 바리새인의 위선으로 여겨진다. 그의 일상이 너무 호화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더더욱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정반대에 놓인 자이다. 자신의 감정과 고통에는 매우 예민하나 타인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법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고도 자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동일화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서 내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을 알아채기 어려운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사이코패스를 깊이 알지 못하지만 우리 내면에는 이런 비슷한 성향이 자리 잡고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타인을 지배하고 싶어 하고 특히 약자에게 힘을 과시하며 그들을 내 맘대로 부리려는 성향(갑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갑질 성향을 가진 내’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나!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힘 있는 자가 아니다. 고아, 과부, 나그네, 가난한 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일컫는다. 약자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이다. 약자로서 살아가는 장애인은 쉽게 괴롭힘을 당하고, 놀림을 당하고, 배척을 당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장애인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부담스러운가? 부담을 털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방법을 생각해 본다. 어렵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야 실천이 쉽다.
내 몸이 원하는 것을 장애인에게 행하는 것이다. 내가 먹는 밥을 그들도 먹게 하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골라 입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옷을 골라 입게 하는 것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그들도 보게 하는 것이다.
만일 자신은 잘 먹지 않는 인스턴트 음식을 장애인에게 쉽게 제공한다면 그것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어떤 말과 행위로 기분이 상하거나 고통을 받았다면 장애인에게도 그러한 말과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각성을 가져야 한다.
내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약자를 깔보고 무시하려는 성향이다. 말을 못한다고, 힘이 없다고 장애인을 막 다루려 하는 나를 정확히 직시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이 나에게 없는지 경계해야 한다.
‘장애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의 약함을 이용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들의 기쁨과 아픔이 나의 기쁨과 아픔이 되어 공감하고 나누는 것에서 그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여전히 부담스러운가? 그래서 기도하는 것이다. 매일 일상 속에서...
곽종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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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함 회보 06호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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